1인칭 전지적 시점/첫사랑, 그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그해 여름, 그녀를 만나다.

Oma Rauha 2025. 2. 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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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방학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햇볕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아직 아침인데도 공기는 이미 묵직한 더위를 품고 있었다.

! 준비물 잘 챙겼어?”

당연하지! 바닷가로 가는 수련회는 처음이라. 잠도 잘 못잤어.”

바닷가로 수련회를 떠나는 날,

평소처럼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며 교회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보였다.

뽀얀 피부, 해맑은 웃음, 긴 생머리,

가느다란 손짓으로 교회 선배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낯선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녀에게 눈길이 멈췄다.

뭔가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았지만,

그냥 어색하게 친구들 뒤에서 서성였다.

"! 인사해. 이번에 나랑 같이 왔어."

선배의 소개로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멋쩍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름을 듣고도 되뇌어 볼 틈 없이 버스에 올라야 할 시간이었다.

내 시선은 온통 그녀에게 향해 있었다.

이내 버스는 출발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은 한없이 익숙한데,

오늘은 모든 게 낯설게만 보였다.

내 시선은 자꾸만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혼자 창밖을 바라보는 척했다.

어느 순간 힐끗거리는 내 시선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당황해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가끔씩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 들은 한마디가 마음을 툭 건드렸다.

내 친구니까 나랑 같은 나이야.”

아까 그 선배의 말이었다.

나보다 누나라고?’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마음 한쪽이 괜히 시들어버린 그런 기분.

나는 어렸고,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그녀는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몇 살이야?"

"3이요..."

"수련회 많이 와봤어?"

"그냥몇 번요"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고, 괜히 더 어색해지는 게 싫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없이 웃기만 했다.

내 서툰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수련회에서 마니또 미션이 주어졌다.

누군가의 숨겨진 친구가 되어 작은 배려를 건네는 게임이었다.

"이거 가져."

"?"

"안마 쿠폰이야. 마니또 심부름이야."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 손에 종이 한 장을 쥐여주었다.

조금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안마 쿠폰이라고 적혀 있었다.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짧은 손편지를 그녀는 줄곧 내게 건내주었다.

나는 모른척 했지만 알고 있었다.

내 마니또는 그녀라는 걸.

이상하게 가슴이 설렜다.

단순한 게임일 뿐인데 괜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그 후로도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같은 조도 아닌데 나를 찾아와 말을 걸었다.

"이제 좀 덜 어색해?"

"조금"

"처음엔 너 말 별로 안 하더니, 이제는 말 한 마디는 하네."

그녀는 웃었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게 그해 여름 깊어지는 내 마음이었다.

어느덧 수련회의 마지막 밤.

사람들은 모닥불 앞에서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나는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잠시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그녀가 다가왔다.

여기 있었네?”

.”

그녀는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끝이네.”

그러네.”

그 말이 유난히 쓸쓸하게 들렸다.

그녀는 가만히 밤하늘과 어두운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그녀와 내일 헤어지는 게 싫었다.

그렇게 수련회는 끝나고 있었다.

수련회가 끝난 날,

버스는 각자의 집으로 사람들을 흩어놓았다.

그녀도 돌아갔다.

나는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깊게 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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